1.루소의 어린 시절: 결핍 속에서 피어난 자아의 씨앗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소설가, 교육학자, 작곡가인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1712년 6월 28일 (사망1778년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 어머니 수잔느 베르나르(Suzanne Bernard)는 루소를 낳은 직후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루소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를 잃은 ‘어머니 없는 아이’로 생애를 시작하게 된다. 그는 훗날 자신의 유년기를 회고하며 “나는 나의 어머니를 죽음과 함께 만났으며, 그녀의 목숨과 바꾼 존재가 바로 나였다”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출생 경험은 단순한 유아기 기억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그의 생애 전반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루소는 아버지 이삭 루소(Isaac Rousseau)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시계공이었고, 독학으로 고전을 읽는 열정적인 사람이었으며, 특히 성경과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을 루소에게 자주 읽어주었다. 루소는 아버지와 함께 많은 책을 읽으며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워갔다. 그러나 이 또한 ‘온전한 교육’이라기보다는 현실 도피적이고 감정 과잉적인 방식이었다. 루소는 이 시기의 독서가 자신에게 지적인 도약을 준 동시에, 정서적으로는 오히려 혼란을 안겨주었다고 술회하였다.
10세 무렵, 아버지는 이웃과의 분쟁으로 인해 제네바에서 도망치듯 도피하게 되고, 어린 루소는 사실상 방치 상태로 남겨진다.
루소의 아버지가 제네바를 떠나게 된 사건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당시 사회적 맥락에서는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루소의 아버지 '이삭 루소(Isaac Rousseau)'는 시계공이자 자존심이 강하고 감정적 성향이 짙은 인물이었다. 그는 제네바 시민으로서 교양 있는 중산층에 속했지만, 자주 분노를 표출하며 주변과 갈등을 빚었다.
특히 루소의 아버지가 제네바를 떠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검사장(혹은 판사)과의 말다툼과 폭행 사건이었다.
- 루소의 아버지는 어느 날, 자신의 정원을 둘러싼 경계 문제로 이웃과 분쟁을 벌이게 되었다.
- 이 사건에서 말다툼이 격해졌고, 결국 루소의 아버지는 검사장의 아들을 폭행하게 된다.
- 제네바는 당시 귀족정 중심의 엄격한 시민법이 지배하던 도시국가였다. 시민이라 하더라도 고위직 인사의 가족을 폭행하는 것은 법적으로 심각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 재판에 회부될 위기에 처한 이삭 루소는 법정 출두를 거부하고, 제네바를 떠나 도피를 택한다. 이는 사실상 제네바 시민권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이삭 루소는 프랑스 남부의 뇌샤텔(Neuchâtel) 등지를 전전하며 시계공으로 일했지만,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루소의 가족관계는 이러했다.
● 아버지: 이삭 루소(Isaac Rousseau)
- 제네바 시민이자 시계공.
- 학문과 문학에 관심이 많은 자수성가형 시민이었다.
- 루소에게 플루타르크의 영웅전, 성경 등을 읽어주며 초기 지적 자극을 제공하였다.
- 그러나 다혈질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검사장의 아들과의 폭행 사건 후 제네바를 떠났고, 루소를 친척에게 맡긴 채 사실상 부자관계를 단절하였다.
- 아버지의 도피는 루소에게 정서적 결핍, 권위에 대한 불신, 가족 해체의 경험을 각인시켰다.
● 어머니: 수잔느 베르나르(Suzanne Bernard)
- 루소를 출산한 직후 사망함. 루소가 태어난 지 9일 만에 숨졌다고 전해진다.
- 루소는 어머니의 실재적인 기억은 없지만, "나의 탄생은 곧 어머니의 죽음이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 그는 이후 자신의 감정적 고립감, 외로움, 애정에 대한 과도한 갈망이 어머니의 부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고백하였다.
- 형: 프랑수아 루소(François Rousseau)
- 루소보다 6살 연상.
- '시계공'도제 생활을 하다가 집을 나가 범죄자로 몰렸고, 결국 사라졌다. 정확한 생사는 알려지지 않음.
- 루소는 형과의 관계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생애 후반부에는 형이 살아있는지도 몰랐다.
- 사실상 유일한 형제 관계도 붕괴된 셈이다
이후 그는 친척들 집을 전전하며, 숙부에게 잠시 맡겨지기도 하고, 고아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다. 보호자의 애정이나 지속적인 양육 없이 성장한 그는 감정적 불안정, 관계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 자존감의 흔들림 등을 겪었으며,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그의 사상 전반에 큰 영향을 준다.
그의 아동기는 ‘애착 형성 실패’와 ‘정체성 혼란’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의 심리학 이론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루소는 이후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며, 사회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교정하려 했다는 점에 대해 깊은 반감을 품게 된다. 그는 아이들이 처음부터 타락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위선과 강압, 사회제도의 부조리가 아이들을 타락시킨다고 보았다. 이 신념은 그의 교육철학, 특히 『에밀』의 핵심 명제 중 하나인 "자연은 인간을 선하게 만들었지만, 사회가 그를 타락시킨다"라는 문장으로 정리된다.
루소는 정규 학교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여러 차례 학교에 입학했으나, 경제적 어려움과 정서적 불안정으로 인해 지속적인 학업이 어려웠다. 대신 그는 거리에서, 책에서, 하인 생활을 하며 직접 몸으로 배우는 교육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체계적인 학문보다는 삶 자체가 주는 교훈과 고통을 더 깊이 흡수하게 된다. 그는 비주류, 타자, outsider로서의 경험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감각을 날카롭게 키워갔고, 특히 억압받는 존재에 대한 공감 능력과 제도 비판의 감수성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루소가 15세 무렵 제네바를 떠나 방랑을 시작하게 된 사건은 그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는 도시를 떠나 방랑하던 중프랑수아즈 드 바랑(Françoise-Louise de Warens)이라는 여성 후원자와 만나게 되는데, 이 만남은 루소의 삶에 극적인 반전을 가져온다. 13살 연상의 바랑 부인은 루소에게 안식처이자 어머니, 애인, 멘토 같은 존재가 되었다. 루소는 그녀의 집에서 음악과 문학, 철학을 접하며 ‘지식인으로서의 루소’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그는 바랑 부인을 “인생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 칭하며, 그녀를 통해 처음으로 안정감과 애정을 경험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관계 역시 불안정하고 복잡한 감정을 동반한 것이었다. 바랑 부인의 시혜적 사랑은 루소에게 늘 열등감과 혼란을 안겼고, 그는 이후 대인관계에서 끊임없이 애정과 경계 사이에서 방황하였다.
2. 『에밀(Emile)』과 청소년기의 재정의
루소의 청소년 이해는 그의 교육소설 『에밀, 또는 교육에 대하여(Emile, ou De l'éducation)』(1762)에 집약되어 있다. 이 책은 단순한 교육서가 아니라, 인간 발달 전반에 대한 철학적 탐구서로 간주된다.
루소는 인간의 발달을 다음과 같이 5단계로 나누었다:
- 영아기(출생~2세): 감각기관을 통한 세계의 인식이 시작된다.
- 아동기(2세~12세): 지각과 경험 중심의 자연적 발달 강조.
- 소년기(12세~15세): 이성 발달의 시작. 학습보다 탐구에 집중해야 한다.
- 청소년기(15세~20세): 도덕성과 감정의 발달이 급격히 일어나는 시기.
- 성인기(20세 이후): 사회적 역할 수행 가능. 결혼과 직업에 대한 준비.
이 중 청소년기는 루소가 "제2의 탄생기(second birth)" 라고 칭한 결정적 전환점이다. 그는 "첫 번째 탄생이 자연의 산물로서의 인간이라면, 두 번째 탄생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오늘날 청소년기를 '정체성 형성의 시기', '사회화의 관문'으로 보는 관점의 원형이다.
3. 루소가 청소년을 새롭게 정의하게 된 배경
루소가 청소년기를 독립적이고 고유한 시기로 규정하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1) 자연주의 세계관
그는 인간이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청소년은 타락하지 않은 순수성과 자연성을 지닌 존재이며, 억압적 교육이 아닌 자유와 자율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는 당시 권위적인 교육 풍토에 대한 반기였다.
2) 개인적 상처와 경험
루소 자신이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고, 부모의 보호 없이 성장했다는 점은 그가 발달의 자율성을 중요하게 여기게 만든 배경이 되었다. 청소년기의 혼란과 방황을 누구보다 직접 경험했기에, 그는 이 시기의 중요성을 통찰할 수 있었다.
3) 계몽주의에 대한 반론
계몽주의는 이성과 논리를 강조했지만, 루소는 감성과 도덕성, 자연성과 자발성을 더 중시했다. 그는 청소년기의 정서적, 윤리적 성숙이야말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보았다.
4. 청소년기 개념의 현대적 의미
루소의 관점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다. 당시 사회는 청소년을 ‘미성숙한 성인’으로 간주하며, 단순히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단계로 보았다. 그러나 루소는 청소년을 단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 고유한 욕구와 발달 과정을 지닌 독립적 존재로 인정했다. 이는 현대 청소년정책, 교육학, 발달심리학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 청소년복지 제도나 청소년활동 육성 정책은 루소의 사상 위에서 성숙해왔다. 자율성, 정체성, 도덕성, 감수성은 모두 청소년기에서 가장 활발히 성장하는 특성이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제도는 결코 실효성을 가질 수 없다.